트레바리 '책임 있는 기술진보' 클럽 두 번째 주제
도둑맞은 집중력, Stolen focus
요한하리 지음, 김하연 옮김
약해진 나의 집중력
나 역시 집중력이 약해졌다는 느낌이 든 지는 오래되었다. 책을 읽으려고 자리에 앉아서도 10분만 지나도 핸드폰 알림은 없는지 흘끔 보기 시작하고, 물 한잔 가지러 다녀오고, (얼마나 앉아 있었다고) 스트레칭을 연이어서 하고 있었다. 분명 학생 때는 한 시간은 기본이고 두 시간, 세 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공부를 두세시간씩..), 지금은 관심 있는 무언가를 하려는 데도 한 시간은커녕 30분도 완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안 그래도 집중력 저하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발견하고서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관심 있게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문제, 휴대폰과 빅테크
저자가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것은, 휴대폰과 휴대폰에 광고를 송출하는 빅테크 기업들이었다. 페이스북, 구글이 대표적이다. 뭐라 반대할 부분이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인은 모두 한 개 이상의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고, 대부분의 현대인은 하루에 3시간 이상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아침에 눈 비비면서 화장실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 중 먹은 별거 아닌 점심식사에 뽀샵을 엄청 먹여서 인스타에 올리며, 잠자기 전에 넷플릭스 VOD를 보면서 하루를 마친다.
사실 이런 일상이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뉴스보고 영화보고 수다 떠는 방식이 조금 더 디지털화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감시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빅테크 기업이 우리의 행동을 추적하고 우리를 프로파일링 하여 우리에게 꼭 맞는 컨텐츠를 제공하는 과정을 문제 삼는다. 빅테크 기업들은 추천(recommendation)이라는 단어로 사용자를 위하여 선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사용자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추천하기보다는 사용자가 더 쉽게 클릭할 것 같은 것을 추천하고 있다. 올바른 미디어라면 부동산 폭락하길 바라는 사람에게도 폭등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편향된 의견보다는 현재 부동산 시황을 잘 전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만드는 추천 알고리즘은 점점 극단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폭등이에게는 폭등과 관련된 클립이나 뉴스 기사를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폭락이에게는 반대의 것들을 전달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것이 사실이라 믿는다. 마치 광신도처럼..
나 역시 추천 서비스를 개발했던 사람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사용자 후킹', '리텐션 알고리즘'... 아무렇지 않게 쉽게 떠들었던 표현들에 갑작스레 불편함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다. 올바른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보다는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기제를 찾고 테스트하고 실행하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었다... 음... 쩝...
두 번째 진짜 문제, 스트레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원인이 뭔지 모르겠으면 항상 등장하는 단어는 어김없이 '스트레스'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중력 저하의 원인 중 하나, 사실상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스트레스였다. 우리가 직장, 직업, 경제적으로 처한 상황에서 점점 예전보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김 부장의 전화를 못 받으면 받게 될 지랄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꽉 자리 잡고 있고, 경기가 안 좋다는 뉴스를 보면서 담달에 잘리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고 있는다. 이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작은 자극에도 날카롭게 대응하게 될 수 밖에는 없게 된다. 당장 길거리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7시간 이상씩 꿀잠을 잘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것은 스트레스와 관련해서 음식(정확하게는 정크푸드)과 ADHD가 스트레스의 원인과 결과의 하나라는 것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먹고 있는 설탕, 탄수화물을 가공해서 만든 음식들은 우리의 기분을 급격하게 좋게 만드는 데 이는 반대로 급격하게 반대의 상태로 만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너무너무 힘들 때 손쉽게 초콜릿과자 한 봉지를 뜯어서 입에 욱여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데... 먹고 난 직후에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과 함께 약간의 릴랙스 된 기분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행복하지... :) 하지만, 이런 단 음식은 급격하게 혈당을 올리기도 하지만 잠시 후 급격하게 혈당을 다시 낮추면서 오히려 점점 집중력도, 힘도 빠지면서 또다시 단 것을 찾게 만든다고 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포장 하나를 뜯어서 먹다가 어떤 날은 대포장 하나를 다 뜯어먹고서야... 퇴근할 때 즈음 정신을 차리게 되는...
그리고, 저자는 우리(어른들)의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정신 건강도 불안하게 만든다고 한다. ADHD는 선천적인, 유전적인 요인도 일부 있겠지만 후천적, 환경적인 요인이 크다고 한다. 가정의 환경이 아이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과도하면 아이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심리적인 불안함을 외부로 표출하게 되고 그것이 ADHD라는 것이다. 부모의 스트레스는 결국 가정의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의 ADHD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략 이런 맥락이다. 담달 월세를 어떻게 지불해야 하는지가 깜깜한 상황인데 아이들에게 안정된 미래나 사색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까? 너무 공감이 된다. 녹초가 되어서 집에 귀가했는데 아이가 80점짜리 성적표를 환하게 웃으면서 보여줬을 때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잘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요? 뭘 해야 하는 건가요?
많은 자기 계발서는 이 지점에서 '나의 의지력에 기반한 극복'을 제안한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기 위한 주문을 외우면서 나는 남들과 다르게 휴대폰을 적게 쓸 수 있는 방법을 몇단계로 제안한다. 또는 명상 테라피 같은 멘탈 강화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스트레스 이뮨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당연히 나도 이런 책들을 많이 많이 읽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도 그럴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이 책은 별다른 구체적 제안을 하지 않는다. 하긴 하는 데 너무 큰 이야기라 공감이 잘 안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유해한 환경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격리시켜야 근원적인 해결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래전에 납페인트의 유해성을 널리 이해하고 납페인트 사용을 금지한 것, 화석연료의 위험함을 인지하고 청정에너지의 개발과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이런 위험한 것(페이스북, 구글, 야근...) 들을 하나씩 법으로 또는 제도로 금지하여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감되는 말이었다. 나쁜 것이라고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데 나쁜 것, 그 자체를 없앨 생각을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 나쁜 것을 피하는 방법을 찾고 연습한다는 것이 사실은 웃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이 부분이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 거지? 페이스북은 내가 너무 자주 쓰는 앱이니까... 구글 검색 없이는 내가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그랬던 걸까?...
하지만 이 책도 스스로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라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기술의 발전은 항상 양날의 검 같았는데... 좋은 것만 골라내고 나쁜 것은 싹 발라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기업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다. 고객은 공짜 서비스에 익숙하지만, 기업은 무한정 공짜 서비스를 줄 수는 없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서로의 이기심은 시작부터 반대편에 서있기 때문에 얼마나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근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책에서 잠깐 '구독'이라는 단어로 그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한적 효과'만 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독이 적용 가능한 서비스는 매우 협소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구독 서비스가 이미도 엄청나게 넘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넷플릭스 1개월 구독권은 1만 원 정도 한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뉴스레터 한 달 구독권도 5천 원 정도 한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뉴스레터가 결국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글을 뿜어내는 공장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상적인 해결안'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때까지는 아쉽지만 명상, 스트레스 이뮨이 되는 자기계발서를 더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AI 2041'을 읽고 (리카이푸, 천치우판 저) (0) | 2024.02.09 |
---|---|
'권력과 진보'를 읽고 (0) | 2023.09.03 |
독서 감상 - IT 리더의 자리 by 마크 스워츠 (0) | 2022.09.12 |
독서 감상 - C레벨의 탄생 / 데이비드 푸비니 (0) | 2022.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