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면담을 요청한 후배가 있었어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멋져 보이는 포지션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엔지니어링도 트렌드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유행하는 기술을 습득해서 더 좋은? 더 많은 보수를 주는 포지션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건전한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어요.
“Wow 좋은 생각인데요? 그럼 그 보직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잠깐 딴 소리하면, 이런 이야기 하는 후배들은 너무 고맙고 좋네요. 이런 상담을 요청하는 그것만으로 너무 대견한 거 같아요)
후배는 이 중요한 순간에... 주저주저하면서 몇가지 답변을 주었지만... 내가 듣기에는 딱히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어요. Oooppsss!!!
서로 당황스런 분위기에... ㅎㅎ 저도 어렸을 때 후배처럼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아이라..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고, 자칫 어색할 뻔했던 점심식사 1on1을 좋은 분위기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그날 후배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그 또래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나에게 맞는 다음 커리어 패스를 찾을 때 데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적어 봅니다.
나에게 맞는 다음 커리어 패스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성’ 이에요. 몸에 안 맞는 옷은 오래 입을 수가 없어요.
Software product 개발 분야는 최근 들어 점점 세분화된 포지션이 만들어지고 있고, 각 포지션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동료들 입장에서는 현혹당하기도 쉽고 반대로 오해를 가지기도 너무 쉽답니다. 어떤 일을 오래 하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거든요. 재미가 있으려면 본인의 성향에 맞아야 하고요.
예를 들어볼게요. 만약에 Infra engineering이 요즘 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럴 때 우리 주니어 엔지니어들은 저 포지션이 왠지 멋져 보이는 거 같고.. 나도 저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런데, 덜컥 운 좋게 직군 이동을 하고 나면... 일 년 후... 내가 뭘 개발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제품은 성공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데... 나는 뭘 기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하는 이놈의 Infra 업무에 회의를 느낀다는... 소위 ’헛소리’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적성이 가장 중요해요. 아무리 인기 있는 포지션이고, 심지어 본인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본인이 적성에 맞는 업무인지가 가장 중요해요. 놀랍지만 직군에 따라서 MBTI 편향이 존재한답니다~
목표로 하는 커리어 패스의 ‘진짜 전문가'로 가는 여정과 본인의 능력치가 얼마나 잘 맞는지도 중요해요.
많은 수의 5년 차 쯤된 engineer에게는 세상이 참 좁아 보입니다. Product manager들 하는 거 보면 한심한 이야기 할 때가 너무 많고, 본인이 하면 훨씬 더 세련되고 매끄럽게 끝내주는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직군 전환을 시도합니다. (진짜 이런 경우 많이 봤어요)
초반에는 꽤 좋은 성과를 내면서 PM 업무에 잘 적응하는 것 같은 므흣한 상황에 처하면서, ‘역시 나는 짱이야’라면서 스스로 엄지척을 날려보죠. 그런데, 몇 년 후 Senior PM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벽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Junior PM 때는 얕은 기술 지식이라도 다른 PM 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르는 거 투성이입니다. 매출 예측을 하라는 데 TAM, CARG... 배워도 배워도 모르는 단어들 투성이... 그리고 때로는 남태평양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강릉의 날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물어보기도 하고... 아 멘붕입니다.
모든 전문 분야의 일도 마찬가지로 시작 단계는 난이도가 높지 않고 그냥 열심히 하면 돼요. (대학교의 교양과목 같은 거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전문가’ 칭호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알았어야 하는 것도 많고, 이제부터 알아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할 때는 옆자리에 있는 친구를 보고 판단하면 안돼요. 그 팀의 Head를 보고 저 사람처럼 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해요. 쪼랩이 되려고 어렵게 커리어를 바꾸는 건 아니잖아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인지를 진짜 진짜 신중하게 판단하는 거예요.
우리는 시간을 투자해서 경험을 얻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손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 큰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는 빠른 익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 Product maker들도 똑같아요.
최종적으로, finally, 어떤 것이 좋은 것이었는지 나쁜 것이었지는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나태주 시인의 ‘오래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가 있어요. 전 이 말을 진심으로 동감하거든요. 비슷하지만 좀 다른 말도 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 섣부른 판단인지를 생각해 보셔야 한다는 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편향이라는 게 있어요. 본인이 이해한 것 위주로 이해하려 하고, 그 사고의 흐름에 맞추어서 근거를 찾아내고 결국은 잘못된 판단을 하지요. (그래서 친구 잘 만나라는 거예요 ㅎㅎ) 어느 정도는 깊게 들어가 봐야 진짜 나랑 안 맞는지... 또는 찰떡궁합인지 알 수 있어요. 오래 자세히 들여다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어요. ‘아닌 거 같아서 광탈’ 제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분야를 최소한 5년 이상은 꾸준히 파는 것을 즐기고, 10년 정도는 되어야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굳이 빠른 손절을 해야겠다면 그 정도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판단하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젤 좋은 거니까 그냥 그거나 잘해...로 들으시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절대로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커리어 패스는 내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아주아주 신중해야 해요.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게임 캐릭터 스킬 찍을 때처럼 많이 알아보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찍어야 해요.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그 후배에게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 인생을 어떻게 잘 살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그 고민 자체가 칭찬할만한 일이네요. OO님의 부탁을 반대나 무시한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동네 선배로써 고민을 나누고 싶었어요. 조금 시간을 가지면서 진짜로 깊게 생각해본 후에 다시 봐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부니가 좋네요. 이 세상의 다른 product maker 동료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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